작가의 말 - 결말 | Reaper School: Guardian of Balance

@hellosunghyun
한국어2개월 전 · 2026년 6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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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DR

Reaper School: Guardian of Balance 의 작가가 시리즈를 다시 돌아보며 느낀 감정적인 여정, Dodo Friends 시대가 남긴 유산, 그리고 진정한 작별의 중요성에 대해 진심 어린 결말을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룹엠입니다.

제가 준비한 "사신학교: 균형의 수호자"의 마지막 글입니다.

본편을 올리고, 외전을 올리고, 오래전에 남아 있던 조각들과 이번에 새로 정리한 이야기들까지 모두 꺼내놓고 나니, 이제야 정말 긴 글 하나를 덮는 기분이 듭니다. 정확히 말하면 끝났다는 느낌보다는, 오래 들고 있던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내려놓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할 때는 그저 예전 글을 조금 정리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다시 들여다보니, 단순히 문장을 고치고 설정을 다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업은 오래된 파일을 여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오래된 마음을 다시 여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장면은 반가웠고,

어떤 장면은 부끄러웠고,

어떤 설정은 아쉬웠고,

어떤 감정선은 지금 봐도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마주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사신학교: 균형의 수호자"는 단순히 오래전에 만들었던 콘텐츠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한 시절의 마음이었고, 한때의 애정이었고,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시간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이걸 왜 지금 해야 하는지,

굳이 다시 꺼내는 게 맞는지,

기억하고 계신 분들의 추억을 제가 다시 손대도 되는지,

혹시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이 작업이 누군가에게는 반갑기보다 불편하게 닿는 것은 아닌지.

정말 많이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손대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일 수 있으니까요. 오래된 작품은 완성도보다 기억의 온도로 남는 경우가 많고, 그때의 투박함이나 즉흥성까지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부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이 이야기를 아쉬움이 남은 채로만 덮어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적어도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온전한 형태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당시의 감정선과 분위기는 최대한 지키되, 시간이 지나며 보이게 된 빈틈과 어긋난 부분들은 조금이라도 다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이 작품을 좋아해 주셨던 분들에 대한 예의이자, 저 자신에게도 필요했던 마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신학교는 저에게 완벽해서 소중한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아쉬움이 많아서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끝났는데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마음에 남아 있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

2019년에 도도한 친구들이 해체된 이후에도, 저는 이 이야기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이 끝났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가고, 콘텐츠는 지나간 것이 되고, 팬분들의 기억도 다른 이야기들로 채워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같이 만들었던 시간,

밤을 새우며 작업하던 기억,

팬분들이 남겨주셨던 반응,

화면 뒤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날들,

그리고 제대로 끝맺지 못한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도도한 친구들의 계절은 분명 끝났지만, 그 계절이 남긴 온도는 제 안에서 오래 식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마 스스로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작품들과 그 시절이 제 삶의 어떤 부분과 너무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요. 콘텐츠는 끝났지만, 그 콘텐츠를 만들던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글이 과거를 다시 꺼내 평가하거나, 누가 맞았고 누가 틀렸는지를 따지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이 글은 어떤 공식 입장도 아니고, 누군가를 대신해 정리하는 글도 아닙니다. 과거의 상황을 다시 판단하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닙니다.

이 글은 그저, 한때 도티님의 팬이었고, 이 작품을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고, 언젠가는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한 사람이 남기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그 점만큼은 꼭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둘러싼 기억과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추억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게 돌아온 이야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굳이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시절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조용히 지나가는 긴 글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반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같은 시간을 지나도 같은 기억을 갖지 않습니다. 같은 작품을 봐도, 각자 다른 장면을 마음에 남깁니다. 그러니 이 글과 작품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닿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작업이 누군가를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때 좋아했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논쟁의 시작점이 아니라,

기억을 조금 덜 거칠게 정리하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이번에 글들을 하나씩 올리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아직도 이 이야기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두려웠습니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었습니다. 반대로 아직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서, 괜히 조심스럽게 묻혀 있던 감정들을 다시 건드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반응해 주셨습니다.

기억해 주셨고, 다시 읽어 주셨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반갑다고 해주셨고, 어떤 분은 그 시절이 떠오른다고 해주셨고, 어떤 분은 조용히 좋아요 하나로 마음을 남겨주셨습니다.

그 반응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단순히 숫자가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칭찬을 받아서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제가 혼자 오래 붙잡고 있던 미련이 완전히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마음이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었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만든 것이 누군가에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이상하게 조금 구원받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걸 이번에 다시 느꼈습니다.

다시 읽으면서 저는 이 작품이 결국 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느꼈습니다.

사랑하면 말해야 한다는 것.

미안하면 말해야 한다는 것.

고마우면 말해야 한다는 것.

기다렸다면 기다렸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

아팠다면 아팠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

소중한 사람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작품 안에서는 천 년의 비극이 침묵에서 시작됩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오해가 되고, 오해가 상처가 되고, 상처가 증오가 되고, 결국 한 세계를 무너뜨릴 만큼 커집니다.

그리고 화해는 거창한 기적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꺼낸 말,

숨겨두지 않기로 한 진심,

서툴지만 마주 보려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돌이켜보면 이건 작품 속 인물들에게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도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많은 것을 만들고, 정리하고,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구조를 찾고, 오류가 나면 원인을 찾고, 누군가 어려워하면 해결책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 방식이었고, 제가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 마음을 말하는 일에는 서툴렀습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고,

고마운데 고맙다고 늦게 말했고,

아픈데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끝난 일도 끝났다고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마무리하는 일은, 제게도 하나의 연습이었습니다.

늦었지만 말하는 연습.

부끄럽지만 인정하는 연습.

아쉬웠지만 고쳐보는 연습.

끝난 계절을 미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바라보는 연습.

제 삶을 돌아보면 늘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고,

인정받으면 불안이 사라지고,

좋은 결과를 만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한 식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해도 공허할 때가 있었고,

인정받아도 외로울 때가 있었고,

끝난 줄 알았던 마음이 몇 년이 지나도 다시 고개를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삶은 한 번에 풀어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식에 가깝다고요.

사신학교도 제 안에서는 그런 식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 기획했을 때의 마음이 있었고,

공개되던 시절의 마음이 있었고,

2019년 이후에도 놓지 못했던 마음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 다시 마주하며 비로소 이해하게 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마음이 겹쳐져서, 지금의 "사신학교: 균형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작품에서 제가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거대한 설정이나 반전만이 아니었습니다.

도티의 무모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

잠뜰의 차갑게 보이지만 끝까지 지키려는 책임감.

각별의 귀찮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오래된 다정함.

쵸쵸우가 가진 기억의 깊이와, 기다릴 줄 아는 마녀의 고요함.

수현이 지옥계의 무거운 공기 사이에 만들어 주던 작은 생활감.

그리고 코아가 끝내 놓지 못했던 이름과 사랑과 상처.

그 하나하나가 이 이야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티는 늘 앞으로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두려워하면서도 뛰어들고, 모르는 것이 많아도 끝까지 알아내려 하고, 자신이 무엇인지 알게 된 뒤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도티를 쓰면서, 어쩌면 제가 되고 싶었던 사람의 모습을 조금 담았던 것 같습니다.

잠뜰은 저에게 가장 오래 남는 죄책감의 인물이었습니다. 지키고 싶었지만 상처를 만들었고, 옳은 선택을 하려 했지만 결국 누군가를 가둬버렸고, 뒤늦게라도 다시 지키려 했던 사람. 잠뜰을 다시 정리하면서 저는 책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때로는 얼마나 잔인한 감정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각별은 늘 가볍게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오래 들여다보는 인물이었습니다. 공허를 잘 안다는 것은 단순히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둠 속에 오래 있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각별을 통해 저는 누군가를 살피는 다정함이 꼭 다정한 말투로만 오지는 않는다는 걸 그리고 싶었습니다.

쵸쵸우는 이 작품에서 기억을 바라보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오래된 책과 마녀의 숲, 잃어버린 과거와 연결된 인물이었고, 그 존재감 자체가 이 이야기의 분위기를 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조용하지만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 오래 기다릴 줄 알지만, 영원히 속아 주지는 않는 사람. 그런 느낌을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수현은 조금 다른 의미로 중요했습니다.

수현은 거대한 운명이나 천 년의 비극을 직접 짊어진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현이 있었기 때문에 지옥계는 단순히 무섭고 뜨거운 장소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지옥계는 자칫하면 고통, 심판, 용암, 감옥 같은 이미지로만 기억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수현이 등장하는 순간, 그 세계에는 갑자기 생활감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대악마의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방문객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뱀뱀이를 찾아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루시퍼의 기분과 속마음을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읽어냅니다.

수현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큰 비밀을 직접 폭로하지는 않지만, 루시퍼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가까운 거울.

대악마의 위엄 뒤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애착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람.

지옥계라는 무거운 공간에 농담과 소란과 일상의 온도를 불어넣는 존재.

그래서 수현은 이야기의 중심 비극을 짊어진 인물은 아니지만, 세계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었습니다. 모든 세계에는 영웅과 배신자와 수호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옆에서 눈치채고, 투덜거리고, 뛰어다니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말로 중요한 감정을 건드리는 인물도 필요합니다.

수현은 바로 그런 온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코아.

코아는 이 작품의 가장 아픈 중심이었습니다.

저는 코아를 단순한 악역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코아는 잘못했습니다. 너무 멀리 갔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했고, 수많은 상처를 만들었습니다. 그 사실은 지워질 수 없습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아픔이 있었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코아를 다시 들여다볼수록, 저는 이 인물이 그저 미워하기만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결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코아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빼앗고 싶었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름을 받았고, 그 이름을 좋아했고,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고 싶었던 존재였습니다.

코아.

그 이름은 처음에는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 주었다는 증거였고, 어둠 속에서 태어난 존재가 처음으로 세계 안에 불린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름은 조금씩 다른 무게를 갖게 됩니다.

이름은 있는데 자리는 없었습니다.

곁에 있는데 역할은 없었습니다.

친구라고 불렸지만, 그 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친구라는 말이 충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코아에게는 아니었습니다.

코아는 역할을 원했습니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저 주신의 그림자나 곁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분명한 이름과 자리를 가진 존재로 불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제대로 말해지지 못했습니다.

듣는 사람도 끝까지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말하지 못한 마음은 천천히 뒤틀렸습니다.

처음에는 서운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외로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질투였고, 원망이었고, 결국 증오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밑바닥에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아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코아는 미워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미워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코아는 용서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린 존재였습니다.

이름을 다시 불리고 싶으면서도, 그 이름이 자기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었다고 믿으려 한 존재였습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끝내 사랑받고 싶었다는 사실을 증오로 덮어버린 존재였습니다.

도티가 코아라고 불렀을 때, 코아가 흔들린 이유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천 년 동안 미워했다고 믿었는데,

천 년 동안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이름을 다시 듣는 순간,

아주 잠깐이라도 그 이름을 다시 좋아하게 될 뻔했기 때문에.

그게 코아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힘을 잃는 것보다,

계획이 무너지는 것보다,

자신이 아직도 그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더 두려웠을 테니까요.

저는 코아를 통해 사랑이 말해지지 못했을 때 얼마나 쉽게 상처가 되는지, 상처가 오래 방치되면 얼마나 무서운 형태로 자라나는지, 그리고 어떤 이름은 선물이면서 동시에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코아는 저에게 가장 아픈 인물로 남았습니다.

완전히 미워할 수도 없고,

완전히 용서할 수도 없고,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존재.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래 남는 인물.

코아는 이 작품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있었지만, 어쩌면 가장 오래 빛을 기다렸던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에는 이 이름들을 꼭 다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티.

잠뜰.

각별.

쵸쵸우.

수현.

코아.

이 이름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신학교는 단순한 설정집이 아니라,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누군가는 도티를 통해 끝까지 앞으로 가는 마음을 기억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잠뜰을 통해 책임과 죄책감의 무게를 보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각별을 통해 무심한 듯한 다정함을 좋아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쵸쵸우를 통해 오래된 기억과 마녀의 숲 같은 분위기를 떠올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수현을 통해 지옥계의 소란과 루시퍼 곁의 온도를 기억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코아를 통해 사랑이 엇나갔을 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는지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각자의 마음속에 다른 장면으로 남아 있는 것이, 이 작품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뒤쪽으로 갈수록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면, 저는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이 쓸쓸했습니다.

글을 정리하는 동안 자주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의 사무실, 그때의 편집 화면, 그때의 목소리들, 그때의 댓글들, 그때의 피곤함과 즐거움. 밤을 새워도 이상하게 웃을 수 있었던 시간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 한쪽은 분명히 뜨거웠던 시간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시절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소중했습니다.

너무 무리했는데,

너무 진심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다시 꺼내는 동안, 저는 그 시절의 저를 여러 번 만났습니다.

잘하고 싶어서 무리하던 저,

인정받고 싶어서 더 많이 짊어지던 저,

끝났다는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던 저,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끼던 저,

그래도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저.

그때의 저는 아마 많이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을, 작품을, 그 시절을, 팬분들의 반응을, 함께 만들던 세계를.

그 사랑이 꼭 건강한 모양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미련에 가까웠고, 때로는 책임감에 가까웠고, 때로는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이제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좋아했기 때문에 오래 남았습니다.

소중했기 때문에 쉽게 못 꺼냈습니다.

아쉬웠기 때문에 다시 다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이야기를 끝낸다는 것은, 이 이야기를 지워버린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요.

끝낸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더 이상 상처처럼만 들고 있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고마움으로 정리하고,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곳에 놓아두는 일입니다.

저에게 이번 작업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이 이야기를 끝났다고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준비한 글은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사신학교라는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에는 작가가 마지막 문장을 찍은 뒤에도 계속 살아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읽어주신 분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떠올리는 장면 속에서,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보는 마음속에서, 이야기는 조용히 다음 장면을 이어갑니다.

그러니 저는 사신학교의 문이 닫힌다고 쓰기보다는, 잠시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명계의 하늘은 원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 놓여 있는 하늘이었습니다.

그 설정을 처음 떠올렸을 때도 좋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더 다르게 느껴집니다. 하늘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다는 건, 결국 그 세계가 아직 나아갈 곳을 가지고 있다는 뜻처럼 느껴집니다.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는 이야기처럼요.

저는 이 이야기가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저 앞의 하늘 너머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도티는 여전히 무모하게 앞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잠뜰은 그런 도티를 한심하다는 듯 보면서도 결국 가장 먼저 손을 뻗고 있을 것입니다.

각별은 귀찮다고 말하면서도, 공허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누구보다 먼저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쵸쵸우는 마녀의 숲 어딘가에서 오래된 책을 펼친 채, 잃어버린 기억들이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수현은 지옥계 한복판에서 또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루시퍼의 말도 안 되는 명령과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속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아는,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자기 이름을 다시 조금 덜 아프게 듣는 법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상상이 좋습니다.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있어도,

아직 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어도,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투덜거리고,

누군가는 또 사고를 치고,

누군가는 그 사고를 수습하면서,

그곳의 하루는 계속 흘러가고 있을 것 같아서요.

사신학교는 끝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여기서 잠시 접힐 뿐입니다.

저 하늘 어딘가에서,

아니, 명계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저 앞의 하늘 너머에서,

사신학교는 여전히 불이 켜진 복도와 시끄러운 발소리와 끝내 말해져야 했던 마음들을 품은 채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도티가 있고,

잠뜰이 있고,

각별이 있고,

쵸쵸우가 있고,

수현이 있고,

코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해 주신 분들의 마음이 있는 한,

그 학교의 종소리는 완전히 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 글의 마지막을 작별로만 남기지 않겠습니다.

이건 끝이라는 말보다는,

한 시절을 조심스럽게 덮고,

저 앞의 하늘에서 계속될 이야기를 믿어보는 인사에 가깝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반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히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예전의 사신학교를 좋아해 주셨던 분들께도, 이번의 사신학교를 처음 마주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를 그저 지나간 콘텐츠 하나가 아니라 마음속 어딘가에 남겨주셨던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 덕분에 저는 이 작품을 다시 꺼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이야기는 혼자만의 미련이 아니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이 되었습니다.

도티님을 좋아했던 마음에서 시작된 이야기였고,

잠뜰님과 각별님, 쵸쵸우님, 코아님, 수현님까지 이어지는 그 시절의 이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름들을 다시 적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때의 공기와 장면들이 조금씩 떠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이름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의 문장이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계절의 표시일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 이름들을 조용히 한 번 더 남기고 싶습니다.

도티.

잠뜰.

각별.

쵸쵸우.

수현.

코아.

그리고 그 이름들을 기억해 주신 모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샌드박스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는 글도 아닙니다.

과거를 판단하거나 정리하기 위한 글도 아닙니다.

한때 도티님의 팬이었고, 사신학교를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고, 이 이야기에 늦은 작별이 아닌 늦은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그룹엠으로서 남기는 마지막 글입니다.

오래 걸렸습니다.

많이 망설였습니다.

계속 생각했습니다.

여러 번 고쳤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여기까지 왔습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다시 누군가의 하루에 아주 잠깐이라도 닿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예전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면, 그것도 충분합니다.

만약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마지막 문장까지 와주셨다면, 그것 역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이 이야기에 마지막 문장을 붙입니다.

하지만 그 문장이 사신학교의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사신학교는 저 앞의 하늘 너머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도티는 그 복도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것이고,

잠뜰은 그런 도티를 붙잡으려 할 것이고,

각별은 피곤한 얼굴로 그 뒤를 따라갈 것이고,

쵸쵸우는 오래된 기록을 조용히 덮고 있을 것이고,

수현은 지옥계의 소란 속에서 또 누군가를 당황시키고 있을 것이고,

코아는 자기 이름을 다시 듣는 법을 아주 천천히 배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면 이 이야기는 충분히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신학교를 처음 탄생시킨 공룡

당시 "사신학교 : 균형의 수호자"를 같이 만들었던 티티, 필립, 그리고 연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호찬님

그 외에 다양한 컨셉 아트 및 영상을 제작 해주신 샌드박스 구성원 분들

그리고 소중한 이야기가 세상 밖에 나올 수 있게 연기 해준 도도한 친구들

이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룹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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